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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불안이라는 동반자읽은 것/~2024 2020. 10. 7. 22:52
접하며,
불안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싶다. 생각해보면 난 언제나 불안과 함께였던 것 같다. 불안은 의식과 무의식, 어디서든 나와 함께 있었다. 그런 불안은 지금도 내 옆에 있다. 하지만 차이는 있다. 과거의 불안은 나를 지배했다. 나는 불안을 통제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고 나를 좀먹기 일쑤였다. 과거의 불안과 달리 현재의 불안은 적절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가끔 날 조급하게 만들긴 해도 더이상 조급증이 날 지배할 순 없다. [불안]은 이런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책이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어떤 차이가 불안을 누그러뜨리고 나를 지킬 수 있게 만들었을까. 우선 불안의 존재를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247p)
불안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가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8p)
알랭 드 보통은 1) 사랑 결핍, 2) 속물근성, 3) 기대, 4) 능력주의, 5) 불확실성을 원인으로 꼽는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원인을 지위로 인한 불안으로 설명한다. 더 높은 지위를 갈망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이런 갈망은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런 욕구가 지나치면 나를 해친다. 불안을 적절히 유지하고 통제해야 하는 이유이다. 알랭 드 보통의 다섯 가지 원인에서 나는 크게 두 가지로 불안을 분류하고 싶다.내면의 불안
“자신의 자리에확신을 하는사람은 담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34p)
불안은 제거해야 하고 존재하지 않아야 올바른 것일까. 불확실성은 불안이 절대 제거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복잡계로 불확실성과 운이 지배한다.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운을 이용하고 불운에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을 구체화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운을 받아들이면, 불안 역시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통제 가능한 영역과 불가능한 영역을 바로 아는 것이 불안을 통제하는 길로 향하는 첫 번째 과제이다.
또한, 내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깎아내릴 때, 울화와 무력감을 느낀다.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메타인지는 언제나 문제 인식과 해결의 첫 단추가 된다. 높은 메타인지를 기반으로 자존감과 자기효능감을 향상해야 타인과 외부 계기로 인한 울화와 무력감을 최소화할 수 있다. 높은 메타인지로 얻은 자신의 지위에 대한 정보가 물질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느낄 불안을 통제할 기회를 준다.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 말이다.외부의 불안
“존 로크의 주장에 따르면 신은 아담에게 이 땅을 다스릴 ‘개인적 지배권’을 준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그 권리를 주어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게 했다. 통치자들은 민중의 도구이며 전체의 이익을 추구할 때만 복종을 받을 수 있다. 놀라운 근대적 사고가 탄생한 것이다. 정부는 자신이 통치하는 모든 사람에게 번영과 행복을 누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때에만 정당성을 얻는다는 주장이었다.” (63p)
불안이라는 감정은 과거에도 존재했지만, 현대에 들어 더 만성적으로 사람들을 괴롭히게 되었다. [테크 심리학]에서 엿봤듯, 감정의 인식과 정의는 사고방식에 비롯된다. 신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으로의 변화가 이런 만성적 불안을 양산하게 했다. 자연의 법칙은 적자생존을 따르는 ‘불평등’한 구조를 전제로 한다. 자연 상태에서 약육강식에 불만을 토로하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인간의 사회 구조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계급화된 형태였다.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설명했고, 계급 사회는 각 계급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했다. 각자의 지위에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았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성공과 행복, 도덕성을 평가하는 수단이 부와 능력 이외에도 종교적, 사회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농부는 가난했지만, 고귀했다. 농부라는 존재가 사회를 형성하고 지탱하는 한 축으로 인정받고 농부는 자부심을 느끼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능력주의와 자본주의, 산업화는 획일화된 가치 체계를 만들고 지배하게 했다. 행복과 도덕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모두 부와 능력에 집중되었다. 동시에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며 누구나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지고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고자 했다. 자연계라는 불평등이 전제된 세계에서 평등한 사회를 구축한다는 것은 고통과 모순의 필연적 생성을 의미했다. 또한, 평등한 사회는 비교 가능한 준거 집단의 수를 비약적으로 증가시켜, 심리적 고뇌와 고통, 불안이 늘어났다.불안의 해소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는 지위의 위계를 없애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수의 가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 다수의 가치를 비판하는 새로운 가치에 기초하여 새로운 위계를 세우려 했다. 이 다섯 집단은 성공과 실패, 선과 악, 수치와 명예의 구분 자체는 유지하면서, 무엇이 각 항목에 속해야 하는지를 재규정하려 했다.” (356p)
알랭 드 보통이 제공하는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은 1) 철학, 2) 예술, 3) 정치, 4) 기독교, 5) 보헤미아 이다. 그리고 그 다섯 가지 방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위와 같이, 지위의 위계를 제거하려는 노력이 아닌 새로운 가치에 기초하는 새로운 위계를 만드는 것이다. 불안을 일으키는 지위를 제거하는 것은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 지위를 제거하려는 노력은 이미 수없이 많이 존재했다. 그렇게 평등한 사회를 추구한다는 인간은 끝없이 자신은 남다르기를, 뛰어나기를, 더 낫기를 갈망한다. 이런 특성은 불안을 양산하는 원동력이 될 뿐,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이 될 수 없었다. ‘내면에 존재하는 불안과 외부에 존재하는 불안을 파악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자신의 가치관을 세우고, 새로운 가치에 기초하여 자신의 위계를 세우는 것’, 즉 자신의 삶에 자율성과 통제력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불안을 해소, 아니 통제할 방법이다. 여기서 또다시 주의해야 할 것은 해결책으로 제시한 다섯 집단(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의 기준에 자신을 또다시 끼워 맞추는 노력이 아닌,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판단으로 자신의 가치를 세우고, 이에 비롯된 자신만의 위계를 따르는 삶이 불안을 줄여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며,
불안이 만연한 현대 사회를 보며, 테트리스 같다고 느껴졌다. 그동안 인류는 수세기에 걸쳐 차곡차곡 쌓아온 규칙, 관습, 의례들을 시기에 적절하게 알맞은 곳에 올려놓고 때로는 수정해가며 나름 안정적으로 쌓아올렸다. 하지만 산업화와 자본주의는 이 게임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상승시킨 것 같다. 벽돌들(시대의 맥락에 맞는 새롭거나 수정된 관습, 의례, 규칙들)은 계속해서 생산되고 빠른 속도로 떨어지게 되었지만, 이 벽돌을 처리하는 인간의 능력은 문명의 발전 속도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빠르게 떨어지는 벽돌을 알맞은 곳에 배치하는 것도, 과거 삐죽 튀어나온 벽돌을 정리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튼튼하게 쌓아오던 벽돌들은 이제 엉성하게 쌓이고 있었고 이를 해결할 틈도 없이 그 위로 또다시 쌓이고 쌓여가고 있었다. 무질서하게 관념들이 쌓아 올려지고 있다. 그리고 어렴풋이 이런 문제를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 내면에 불안이 싹 트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 게임이 끝나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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