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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격을 팝니다] 나를 설명하는 공용어
    읽은 것/인문 2020. 10. 27. 06:19

    접하며,

    "성격 유형이라는 언어로 자기를 이해하는 기술은 개인의 소멸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개인을해방하는힘도 있다. 자기를 선명하게 인식하는 언어로 무장하고 전통과 관성에서 벗어난 이들은 자신이 곧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고 결정하는 주체라고 생각하게 된다." (19p)

     성격 유형은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에 의해 형성된 개인의 성격을 단순화시켜주고, 고통스럽고 어려운 자아 탐색과 자아 성찰을 기계적으로 돕는다. 자아실현을 위한 아주 편리한 도구인 셈이다. 하지만 편리함은 결핍을 유발한. 편리함이 일으키는 결핍에 대한 이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테크 심리학]을 봤다면, 기술이 인간에게 미친 감정과 무의식의 변화에 대한 통찰을 통해 알 수 있다. 편리함과 결핍은 매우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상관관계로 이어진다.
     [성격을 팝니다]를 보면, 여성의 인권이 인정받기 이전 시대에 사는 두 여성이 투철한 소명의식을 갖고 목표를 향해 헌신적으로, 열정적으로 살며 이룬 업적이 기억에 남는다. 시대적, 사회적 저항을 뚫고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영웅적으로 보인다. 가정에서 시작된 그들의 삶이자 철학을 담은 산물이 현재에 미국사회에, 아니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 있자면 전율이 느껴지기도 한다. 여성으로서는 정말 미지의 세계이자 환영받을 수 없는 세계로 나가며 겪었을 고통과 역경은 존경심이 절로 솟는다. 이렇게 탄생한 MBTI는 과거 혈액형 성격설만큼 선풍적 인기와 유행을 일으키고 있지만 정말 우리가 믿고 따를 만큼 충분히 검증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개인을 틀에 가두고 소멸을 유발한다는 여러 심리학자들의 말처럼 거짓말투성이의 자본주의 사회구조를 강화하는 장치일 뿐인 걸까.


    MBTI가 추구한 가치

    "성격 유형 지표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표현할 모국어를 제공하게 된다. 그 언어는 참신하게 느껴졌고 해방감을 주었으며 진실하게 느껴졌기에 사람들은 그 언어가 제공하는 용어를 써서 자신들의 인생을이야기하고 싶은충동을 느끼게 된다." (120p)
     살면서 가장 처음 사람들 앞에 서서 자신을 소개하던 날을 기억하는가. 내 안에서는 그토록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던 나라는 존재가 입 밖으로 꺼내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사실을 처음 맞닥뜨린 순간이었다. 그리고 간신히 입 밖으로 내뱉은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의는 너무나 초라하고 나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그때 처음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이것이 성격 유형 지표가 갖는 유용성이다. 그리고 이것이 성격 유형 지표가 제공하는 언어가 갖는 매력이다. 나라는 사람을 정의 내려주고 어떤 단어와 어떤 요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를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때, 왜곡과 오류를 최소화하면서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지 알게끔 도와준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언어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와 같이 성격 검사를 마친 이들과 같은 언어로 자아에 관해 이야기하고 나와 당신을 공유하고 굉장히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경험들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만큼 큰 해방감과 기쁨을 준다. ‘나를 알아가는 기쁨’과 ‘자아를 타인에게 (비교적) 온전히 전달 가능한 방법을 갖게 된 기쁨’은 MBTI가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할 기회를 주었다. 이렇게 얻은 정보로 자신에게 꼭 알맞은 적성을 찾고 자기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와 기업 등 많은 조직에서 자행되는 인간 분류 작업은 사람들을 평가하고 자존감을 낮추고 자신에게 모든 잘못이라는 짐을 지게 하였다. 이사벨의 ‘당신네 심리학자들은 항상 사람들에게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찾으려고 해요. 성격 유형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성격 유형은 사람들이 그들의 특별한 재능을 탁월한 수준으로 연마하도록 돕는 도구입니다.’라는 생각은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성격 검사를 통해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 가능하다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조직과 개인 사이 존재하는 요구들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좋은 도구를 제공했다.
    "자신의 심리 유형을 찾아가는 시간은 자신을 통제하는 거대한 체계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명확하게설명할 기회였다. 이 체계란 전통적인 산악의 관념 너머에 있으며 하느님을 초월하고 지상의 법률을 넘어서는것이었다. 바로 이 체계 안에서 개인의 성격, 혹은 자아는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판단한다. 당신이 누구였는지 도 누구인지 판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당신 자신이다." (102p)
     하지만 성격 검사는 개인에게 선택권과 통제권을 박탈시켰다. 성격은 인간의 고정된 특성이라는 주장은 캐서린의 것이었다. 칼 융의 [심리 유형]을 기반으로 한 캐서린의 [성격 유형]은 인간의 성격을 고정되었다고 단정 지으며 한계를 명확히 했다. MBTI가 갖는 한계와 문제는 이것뿐이 아니었다.

     

    MBTI의 현재

    ‘성격이란 것이 중단 없이 이어지는 일련의 행위가 낳은 산물이라고 할 때 그에게는 참 근사한 구석이 있었다. 그는 마치 1만 마일 밖에서 일어난 지진을 감지하는 정교한 지진계와 결합한 사람처럼, 삶에서 일어날 기회를 알아채는 탁월한 감각이 있었다.’  -피츠 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피츠 제럴드가 설명한 바에 따르면 사람의 성격은 한번 결정되고 그대로 고정되는 게 아니라 가변성을 갖는 것이었다. 수많은 개인이 살아온 시간 동안 누적된 행동과 생각 관습이 만든 집합체이며, 예측 불가능한 냉혹한 세계와 만나 깨지고 무너지며 생긴 자국들의 기록이었다. 성격의 가변성을 인정하지 않는 MBTI는 동일 인물이 같은 검사를 실행하고 다른 결과를 받는 일들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한계를 넘어서기 어려워 보였다. 노동 시장에 이미 존재하던 검사 도구들과 차별성으로 개인의 성격 유형에는 비정상이 없다는 점, 각기 다른 관심과 선호가 있을 뿐이고 각자의 성향에 잘 맞는 일과 안 맞는 일들이 있다는 점을 내세웠던 MBTI는 본래 추구했던 가치를 점점 잃고 있었다. 칼 융에서 캐서린으로, 캐서린에서 이사벨로 성격 유형이 계승되면서 그 의미는 조금씩 변하고 수정과 편집이 이뤄졌지만, 본래 추구했던 ‘자아에 관한 관심을 살리고 이를 회복한다’는 가치는 지켜지고 있었다. 하지만 성격평가연구소와 같은 기관들의 손을 거치며 검사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목하에 검사 방법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본래의 동기는 퇴색되고 말았다.


    "이사벨은 ‘각자 성격 유형에 맞는 일에 직원을 배치한다면 일을 더 잘하고, 그 일을 더 좋아하고, 더 오래도록 일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고’ 이는 ‘업무 만족도와 근속 기간을 공략해 이직률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자신 있게 가설을 세웠다. (중략) 회사에 남아서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격 유형에 맞는 일’을 하고 있다고 이사벨은 결론지었다. 내향형 사람들은 회계와 사무직 일을 했고, 외향형 사람들은 검침이나 정비 업무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거듭 말하지만, 이사벨의 관찰 내용을 입증해줄 통제된 연구나 실질적인 증거는 전혀 없었다." (301p)
     이사벨이 성격 유형 검사를 연구하고 만든 의도와는 달리, 성격 유형 검사는 기존 노동 시장에 존재하던 검사 도구들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과학의 외피를 입은 추상적인 성격 유형 언어는 고용과 해고, 승진, 인원 감축과 같은 다루기 고약하고 따분한 일들을 처리하기 매우 쉬웠다. 개인의 성격 유형에 맞는 일을 찾고 좋아하고 오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이사벨의 기대는 사라지고, MBTI는 기업이 찾는 인재 유형 틀이 되어 기업의 입맛에 맞는 인재상 육성의 빌미를 제공했다. 개인의 성격 유형에 맞는 일을 찾기 보다, 원하는 기업의 인재 유형 틀에 개인을 억지로 맞춰 끼워 사는 사람들을 만들었다. 결국, 이전에 존재하던 기업의 인사 관리 틀의 문제 삼아 만들어진 성격 유형 검사는 좀 더 과학적인 모양새를 갖춘, 기업의 새로운 인사 관리 틀이 된 셈이다.
     성격은 상품이 되었다. 인간 안에 내재한 성격이라는 것이 상품화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떤 성격이 더 선호되고 요구하게 여기게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성격의 가치가 분류되고 그 값이 매겨지게 되면서 인간은 상품화되었다. 인간 역시 부와 지위로 값을 매기게 되었다. 인간은 상품으로 기업에 팔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팔릴까. 어떻게 하면 나라는 상품을 더 좋아하고 더 비싸게 팔 수 있을까. 남들과 차별화될 수 있을까. 인간을 평가하는 다양한 잣대는 잊히고 자본주의 사회에 가장 부합되는 가치인 부와 지위로 인간을 분류하게 되었다. 명확한 잣대와 분류 기준은 경쟁 사회로 이끌었고 사람들을 영원한 불안의 늪에 빠뜨렸다.

    "인간은 상품으로 분류되었고, 한 개인의 고유한 속성들의 조합으로 성격을 이해하고 인격의 존엄성을 논하던 낭만주의적 관념은 명멸하고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318p)


    마치며,

    "이사벨이 사망한 후에는 뜨거운 애정과 엄격한 지성을 갖추고 쉴새 없이 MBTI를 통제하려고 하는 사람이 더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MBTI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대중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사회적 현상을 일으켰다." (439p)
     이사벨의 죽음이 MBTI를 더욱 자유롭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MBTI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지성인의 존재는 MBTI의 본질이 흐려지지 않도록 전통성, 정통성을 지키는 데 도움을 됐을지 몰라도, 캐서린이 MBTI 형태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사벨의 존재는 MBTI를 대중적으로 유행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MBTI의 가치를 수호할 헌신적 지성인이 사라지고 MBTI는 완벽히 대중화를 이루고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MBTI는 초기에 추구했던 가치를 잃고 양산되는 여러 성격 검사들에 의해 의미는 퇴색되고 의미가 왜곡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여러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이를 넘어서는 개인을 해방할 힘과 잠재력이 있었다. 이게 MBTI가 많은 어려움과 한계들을 극복하고 전 세계에 퍼지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원동력이었다. 또한, MBTI는 진실이냐 혹은 거짓이냐며 단순하게 양분시켜 평가해선 안 된다. 언제나 이분법적인 사고를 경계하고 그사이에 존재하는 회색 지대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MBTI는 그 타당성과 신뢰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되어 왔고, 그 기원과 사용 용도에 대해서도 비판이 멈추지 않았으며, 시중에는 원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유통되는 유사품도 많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설명하는 도구로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467p)

     

    "그녀는 메리에게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은 매우 외로운 싸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기를 발견하면 속박을 끊고 자유를 얻게 되지만 이는 동시에 일상생활에서나 애정 생활에서 그동안 구축했던 관계들을 끊어 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자기 자신을 만난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혼자서 지는 일이며 그 책임감은 곧 지독한 외로움과 통했다." (164p)
     자아 발견, 탐색, 개발 과정은 험난하다. 고통을 감내하며 이 길을 기꺼이, 그리고 스스로 나아가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기를 정해주길 바라는 것 같아 보인다. 자신을 스스로 들여다보고 빛나고 자랑스러운 면뿐만 아니라, 추악하고 어둡고 부정하고 싶은 기분 나쁘고 축축한 감정들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런 것들을 명확히, 그리고 분명하게 전달받길 원한다. 마치 내부를 볼 수 없는 정체불명의 상자에 스스로 손을 넣어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참된 자아실현의 기회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긴 채, ‘무엇이 들어있죠? 아름다운 것인가요? 아름답다고 해주세요. 제발!’이라며 외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제 3자의 손 역할을 MBTI가 매우 잘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선호하고 맹신하고 따르고 추종한다. MBTI는 분명히 유용한 도구이다. 자아 탐색과 성찰, 실현의 경험을 쉽고 극적으로 선사한다. 이것을 계기로 메타인지를 높이고, 자신을 더 알고 싶다는 감정을 들게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유용하다고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유용한 만큼 위험하다.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분류해 틀에 박힌 사고를 유발한다. 그리고 성격은 불변이며 타고나는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맹신한다. 사람의 성격을 어떻게 16가지로 나누고 모든 사람이 각 유형에 해당한다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세상으로 나아갈 때 스스로 세상에 뛰어들기보다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르는 경향을 보인다. 답습이 관습이 되고 상식이 되며,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하지만 그 기준을 누가 처음 만들고 제시한걸까. MBTI의 역사를 따라가며, 우리 주변에 당연히 존재하고 당연히 여기는 시스템이나 상식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타당성과 신뢰성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이 검사 결과에 억지로 자신을 맞추고, 결과에서 벗어나면 비정상적으로 여기며, 자아가 고정되어 있고 16가지 유형이 말하는 삶을 맹목적으로 따르려 하는 행동만큼 멍청한 것이 있을까. 유용한 것은 취하고 위험한 것은 피하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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