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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 본성의 법칙
    읽은 것/인문 2020. 3. 28. 05:34

    - 소감

     우선 서평을 쓰기에 앞서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인간 본성의 법칙]은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가장 압도적인 외관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감사의 글을 빼고도 905쪽에 이르는 양은 실로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그런 마음이 이 책에 입문하는데 나를 더욱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것 같아 반성한다. 그리고 아직 다 읽지 못한 채 서평을 쓰게 되어 반성한다. 하지만 반드시 완독하겠다는 의지는 읽을수록 확고해진다. 그리고 많은 양에 파묻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빛나는 통찰과 지혜를 다시 찾으러 언제고 방문할 의지도 샘솟는다. 그만큼 책을 읽는 동안 수많은 아이디어와 통찰, 기회를 접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인간이 갖는 한계(본성)를 다룬다. 이 한계를 인지하고 인정하고 다루고 극복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이다. 무의식적인 본성으로 저차원적 자아에 빠지지 않고 의식적인 노력으로 고차원적 자아에 도달하려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이다. 인간 본성이라는 방대한 영역을 다루고 이를 계발하는 방법에 대해 안내하고 그 과정에서 하나하나 언급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통찰이 담겨있다. 다루는 내용 자체가 너무나도 빛나고 가치 있는 원석이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보고 다양한 교훈을 배우고 삶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좋은 책이다.
     다만, 저자가 글을 전개하는 방법이 지루했다. 핵심 메시지에 비해 부수적인 설명이 너무 길고 많게 느껴졌다. 또한, 근거 있는 인간 본성에 관한 주장에 비해 적용 시키는 방법들이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 다수 보인다. 특히 제 3 법칙, 역할 놀이의 법칙 중 “마음을 편히 먹고 주의를 기울이되 너무 대놓고 찾아서는 안 되고 곁눈으로 잡아내야 한다”, “누군가 당신을 시기한다고 의심되면 최근 당신에게 있었던 좋은 일을 이야기해 보아라.” 들과 같이 모호하고 추상적인 방법들이 소개되는데, 일상 속에서 법칙으로 적용하기엔 오히려 일반화의 오류와 확증 편향에 빠질 우려가 있어 보인다. 물론 저자도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보단 여러 번 같은 신호가 나타나는지 기다려보는 편이 좋다.”라고 주의할 점을 언급하긴 하지만 방법 자체에서 다소 주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부분이 있어 뇌피셜같이 느껴진다. 사실과 주관적인 판단의 경계가 모호해 책 전반적으로 명쾌함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글 구성에서, 18가지의 법칙을 서술하면서 지겹도록 지루하게 반복되는 똑같은 개념들이 등장한다. ‘메타인지/ 맥락적 사고/ 애착 관계/ 불확실성과 같이 공통으로 반복되는 언어와 개념에 대해 먼저 추려서 설명하고 본성에 대해 좀 더 명료하게 설명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무수히 반복되지만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개념들에 대해 짧게라도 정의 내리는 식으로 글이 구성되었다면, 좀 더 명확하게 인지하고 학습할 수 있지 않았을까? 목차 구성에 대해 저자의 의도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분명한 사실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자아와 정체성의 형성, 목표와 방향성 설정, 그리고 자아실현을 실천하며 수없이 학습하고 경험하고 이야기를 나눴던 내용이 전부 담겨 있었다. 책을 읽으며 순간순간 가슴이 뜨끔하고 두근거릴 때가 많았다. 본성에 대한 자세하고 자세한 설명과 인용한 사례들은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얼굴은 달아올랐다. 나의 추한 내면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 나갈수록 빠르게 뛰는 심장이 만드는 긴장감은 내 안에서 벅참으로, 기대감으로 변해갔다. 내 안에 꼭꼭 숨겨두었던 부정적인 자아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여전히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내 한심한 모습들이 존재했지만, 더는 두려움이나 불안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고 존경하는 위대한 인물들에게도 존재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겪었던 번뇌와 성찰은 괴롭기보다 위안으로 다가왔다. [인간 본성의 법칙]은 내 관심사를 관통하는 주제들을 많이 다뤘기 때문에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대부분 책을 읽을 때 자아 형성과 가치관, 삶의 방향성과 같은 주제에 초점을 맞춰 읽는 내게 익숙한 개념들이 아닌, 내게 영감을 주고 스스로 성찰하게 되었던 부분들을 서평을 통해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싶다.


    -성찰의 순간

    -태도가 전부다, 습관이 삶이다.
    “좋든 싫든 가족은 그의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발을 디디고 서 있던 땅이 사라져버린 기분이었다.” (326p)
     이제 겨우 열여섯 살이 된 안톤이 맞이한 혹독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담은 문장이다. 그렇게 학대받고 혼란스러운 유년기를 겪게 한 아버지와 심리적인 짐으로 부담스럽다 못해 짓눌려버릴 부양할 가족들이었지만, 그러한 가족들이 떠나고 혼자가 된 안톤 앞엔 더욱 비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분노와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도 무기력에 빠지길 반복했다. 안톤을 악순환의 구렁텅이에서 구출한 것은 생존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스스로 부양하기 위해 움직여야만 했다. 생존에 대한 욕구가 만든 작고 사소한 성취는 안톤이 의사라는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 와중에도 공부하고 책을 읽고자 도서관을 줄기차게 드나들었다. 자신을 돌보기 시작했다. 삶이 선순환으로 들어서자 생각도 기분도 달라졌다. 안톤은 의사이자 성공한 작가가 될 수 있었다.
     ‘태도가 전부다. 습관이 삶이다.’ 어떤 영상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신영준 박사를 본격적으로 존경하고 본보기로 삼게 된 계기가 바로 저 말이었다. 그리고 저 말을 증명하는 사례가 바로 안톤 체호프다. 몇 쪽 안 되는 분량의 책 안에 드러난 사례를 읽는 것만으로도 비참하고 고통스러움이 전해졌다. 그런 삶을 딛고 일어서는 만으로도 벅차고 탈진할만한데, 나락에 떨어져 내리고 있는 가족들을 모두 구출해냈다. 그렇게 자신을 학대하고 지옥으로 몰아넣었던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했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기적을 가족에게 전하고 소설과 희곡을 통해 인류와 공유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은 단 하나의 변화였다. 생존을 위한 실천이 사소한 성취를 이루었고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였다. 이 믿음이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 변화한 태도는 긍정적인 습관을 만들었고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하였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맞이하게 된 것은 바로 세상을 다르게 보기로 한 태도였다.
    “세상은 그냥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사물이나 사건은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쁘거나 옳거나 그르거나, 추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사물과 사람에 색깔을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는 것은 특정한 시각을 가진 우리 자신이다.” (337p)
     결국, 내가 문제라는 말이다. 비극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태도를 바꾸고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이보다 희망적인 소식이 어디 있을까. 나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내 삶은 평화롭고 평온했기에, 성장이 더디고 변화를 두려워했다. 역경은 고통스럽게 날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고 학습은 지루하게 날 유연하고 자유롭게 만든다. 역경에 두려워 도망칠 것인가. 다르게 바라보면 성장의 계기가 된다. 안톤의 삶은 내게 본보기와 영감이 되었다. 나를 괴롭히던 잡념과 소음이 사라지고 머리가 상쾌해졌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너무나 또렷하게 그는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한목소리를 들었다. ‘마틴 루터, 옳은 일을 위해 일어나라. 정의를 위해 일어나라. 진실을 위해 일어나라.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세상 끝까지라도 함께할 것이다.’”(572p)
     마틴 루서 킹은 자신의 종교가 그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에 불과하고 직접 하느님과 소통해본 적이 없었다. 하느님의 존재를 내면으로부터 느껴본 적도 없었던 그 순간에 기도를 올리고 비로소 내면에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공황 상태에 빠진 킹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모든 의심과 불안이 날아간 기분이었다. 이후 킹이 지치고 쓰러져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목소리는 킹을 이끌었다. 목소리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킹의 숭고하고 희생적인 행위들이 영적인 세계와 맞닿게 한 것일까. 정말 하느님이 킹을 돌보고 늘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이 모든 것의 진위는 결코 알 수 없다. 다만, 고통에 지쳐 나약해져 가는 킹의 의지를 다시 굳건히 만들고 행동하게 한 심리적 동기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전에 그의 삶을 인도해주었던 여러 성향과 직관이 갑자기 하나의 목소리로 변했다.” (582p)
    “더 높은 목적의식을 찾는 것, 부모나 친구, 동료의 방향이 아닌 나 자신의 방향을 제시할 임무를 찾는 것이다. 이 임무는 나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나의 개성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585p)
     킹이 지니고 있던 여러 성향, 직관, 관점들이 위기 속에서 하나의 크고 원대한 가치로 일치하게 되며 비로소 하나의 소명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소명은 목소리를 낼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것이다. 특히 이미 종교를 가지고 있던 킹에게는 하느님의 형상으로 내면에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내면엔 다양성이 존재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가치를 실현하길 열망한다. 이 가치들이 상충할 때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렇게 혼재하는 가치들 사이에서 체계를 세우고 우선순위를 만들어야 한다. 그 기준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목적의식, 소명이다. 내가 삶이 다하는 그 날까지 내 모든 능력을 쏟아붓고 싶은 일. 이 인생과업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삶의 정의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마틴 루서 킹의 일화를 보며, 그의 유명한 연설인 ‘I have a dream’을 유튜브를 통해 찾아보게 되었다. 처음은 잔잔하게 천천히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는 인권 회복의 꿈을 주창하며 강력한 힘을 표출했다. 오래된 영상에 좋지 않은 음질을 뚫고 나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할 만큼. 결연한 그의 표정에선 흔들림이라곤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소명으로 인지하고 그 소명을 확신하고 소명에 부응하는 것. 그 길을 걷는 사람의 얼굴엔 저렇게 단호하고 확고함이 묻어나는구나. 내가 가진 삶의 방향은 어떤가. 저렇게 수많은 군중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 퍼져나갈 수 있는가.


    -영감의 순간

    -인식 너머의 실제
    휴즈는 모든 것을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했고, 부모를 실망하게 할까 하는 어마어마한 두려움에 극도로 공손하고 순종적인 아이가 됐다. 그러나 실제로 휴즈는 자신이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사실이 지독히 싫었다. 부모가 죽고 나자 미소와 순종 아래 숨겨져 있던 그의 진짜 성격이 모습을 드러냈다.” (180p)
     휴즈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페르소나를 키우고 일치시키려 노력했지만, 이 노력은 오히려 휴즈 내면에 크고 짙은 그림자를 만들고 말았다. 양극단은 서로를 끌어당기듯, 강력한 의존성이 통제권에 대한 집착을 불렀고 이는 그림자로 작용해 휴즈를 통제권에 강박을 가진 독재자로 만들었다. 심지어 이러한 그림자는 고도로 훈련되고 성공적인 자아를 지녔을 대통령에게도 드러난다. 바로 리처드 닉슨이다.
    “오래된 정치적 상처들까지 언급하게 됐고 마음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응어리진 원한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373p)
     물 위로 드러난 원한은 분노와 좌절로 금세 이어졌다. 부정적 감정은 서로 몰려다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비극의 전조가 울린 것이다. 다만 숨을 죽이고 기다릴 뿐. 닉슨은 자신의 그림자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워터게이트 사건을 이성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마지막으로 남긴 “항상 기억하세요. 남들이 당신을 미워하더라도 당신이 그들을 미워해 스스로 파괴하지 않는 이상, 저들은 이길 수 없습니다.”라는 말과는 달리, 닉슨 본인은 스스로 자신을 파괴했고 패배했다.
     우리는 인식을 곧 실제로 받아들이곤 한다. 어디선가 본 칼럼 속 문장이 떠올랐다. "‘인식이 곧 실제’라는 믿음은 남편 흉보기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마치 사진사가 렌즈를 바꿔가며 실체를 변형하는 행위에 대해 스스로 자각하고 있듯이, 남편을 흉보는 그 순간 스스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객관적 실체와 무관한 순전히 주관적인 인식작용이라는 뜻입니다." 잠시 나만 돌아봐도 우리는 자신의 실체를 왜곡해서 타인에게 전달한다. 타인이 자신을 인식하는 것과 자신의 실체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인식이 곧 실제’라는 보편적 믿음 탓에, 타인의 기대와 인식작용을 나의 실체와 일치시키려는 오류를 범하고 만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인격의 어두운 면을 자꾸만 더 땅속 깊이 들어가게 한다”(392p)
     어둠은 깊이를 나타내는 시각적 표현이자, 본질이다. 어둠은 부정적인 존재로 부정하고 회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올바름’이라는 강력한 규칙을 강요하는 문화에 살고 있다. 이는 더 치밀하고 견고한 그림자를 형성하게 한다. 아이러니한 건 억압하고 외면한 그림자에 남몰래 끌림을 느낀다는 점이다. 우리가 어둠 표출에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등장하는 추악한 악인인 ‘리처드 3세’에 끌림을 느낀 건 이러한 이유 때문 아닐까. 또한, 그렇게 멀리 가지 않더라도 스티브 잡스는 그림자를 창의적 에너지로 활용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림자라는 인식 너머 존재하는 억압되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인식 너머의 어둠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예술가적 기질에 대한 본성
     제 5 법칙, 선망의 법칙에 등장하는 코코 샤넬의 사례는 내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어떤 매체이건 최고의 예술은 이렇게 깊이 있는 것을 표현한다. 그런 작품이 모든 사람에게 강력한 반응을 유발하는 이유는 거 이에 표현된 어둠이 그만큼 많이 억압되어 있기 때문이다.” (410p)
     어둠은 짙을수록 그 안에 내재한 에너지가 많고 강력하다. 예술로 다가오는 수많은 작품 속에서 어둠을 느끼고 메시지를 포착하고 가늠할 수 없는 깊이감에 빠져드는 이유가 어둠에는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코코는 큰 야망을 품고 있었으나 늘 손에 닿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녀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나면 늘 현실에 실망했다. 끝끝내 대체 뭐가 그녀를 만족하게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샤넬이 바랐던 욕망의 대상은 늘 뭔가 어렴풋하고 손에 잡히지 않고 터부시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더 끌렸다. 이게 바로 인간 욕망의 본성이다. 샤넬은 그 본성을 뒤집어 자신이 창조한 대상들 속에 집어넣었다.” (224p)
     늘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무엇에 흥분되고 매료되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고 추후 나의 작업에 반영할 가치들을 찾을 수 있었다. 과연 예술은 무엇일까.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그 무언가 간질간질한 것들이다. 이는 판타지로 우리의 곁에 항상 존재해왔다. 명확하게 설명되는 것들은 대중적으로 다가갈 순 있어도 예술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이상함이 바로 예술적으로 다가가게 된다. 사람들은 의문을 느끼면 답을 내리고자 한다. 기꺼이 시간을 투자해 그 미스터리를 해소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미스터리에 충분한 의도와 의미가 담겨 있을 때 매료되어버린다. 상상은 실제로 경험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만큼의 힘이 있다. 미스터리의 해소와 그 과정을 통해 느끼는 흥분은 현실에서 놓여난 해방감과 욕망의 해소를 선사한다. 늘 욕망의 대상은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영역 안에 존재해왔다. 샤넬은 금기를 깸으로써 욕망의 대상을 자신이 창조한 대상 속에 집어넣었다. ‘본성을 뒤집어 자신이 창조한 대상들 속에 집어넣었다’라는 말, 그 자체가 예술이 정의 아닐까.
    “당신이 세상에 바라고 탐내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남들과 그들의 억압된 욕망, 채워지지 않는 판타지에 초점을 맞추도록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225p)
     샤넬의 행보는 내게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깨달음을 줬다. 나는 어떻게 욕망을 담아낼 것인가. 어떤 욕망을 담아낼 것인가. 의뭉스럽고 모호한 것들이 금기를 깨고 경계를 넘을 때 그렇게 흥미로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코코 샤넬은 진정한 예술가였고 그녀의 행보는 예술이었다. 금기와 미지의 영역에 흥미를 느끼는 까닭과 탐구해야 할 이유를 깨닫고 관점을 뒤집고 경계를 넘나드는 행위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타인의 억압된 욕망과 채워지지 않는 판타지를 나의 핵심가치의 결을 어떻게 일치시킬 수 있을까.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메시지를 극대화 시킬 방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대상과 대상을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내 의도가 전달될까. 그리고 흥미를 느끼고 흥분하게 만들 수 있을까. 새삼 예술적 영감은 어디에나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마치며

     열등감과 가면 속에서 살았던 내 어린 시절은 부자연스러움의 오류를 일찍 깨달을 수 있게 도와줬다. 진정성과 매력은 자연스러움으로부터 발현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연기하는 행위를 부정할 필요도 없다. 진정성 있는 연기를 해라. 자연스러운 나에서 비롯된 연기가 진정성 있는 연기를 만든다.
     모든 인간의 본성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진리에 다가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불가능에 가까운 만큼 성스럽고 고결한 길이기 때문에 존경받고 추앙받는 것이다. 결국, 거의 모든 사람은 본성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하나 이상의 결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좋은 사람이란, 자신의 결점을 인지하고, 부정이 아닌 인정으로 하나가 되고, 부정적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인 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더불어 삶을 전반적으로 폭넓게 다루는 이 책엔 매우 많은 가치와 통찰을 담고 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나 많은 탓에, 모든 내용을 수용하고 다듬어 체화시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그 과정이 지루하고 힘들지라도 광산에서 빛나는 금덩이를 발견한 것과 같은 기쁨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광산과 같이 그 끝을 알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개발하고 의식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저 돌산에 난 구멍이듯,광산과 같다 느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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