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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미숙함을 대처하는 태도본 것/영화 2024. 10. 13. 17:10
이상적인 아버지
사회적인 성취와 풍족한 경제력을 갖추고 자식을 아낌없이 지원해주며 탁월함을 가르칠 수 있는 아빠? 여유와 유머를 가지고 편안함과 친숙함으로 곁을 지켜주며 가족의 유대를 느끼게 해주는 아빠?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이 두 아빠 사이에서 어떤 아빠가 더 나은 아빠인가 저울질하며 평가하려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두 아빠 모두 좋은 아빠이자, 부족한 아빠였다. 이 세상에 부족함 없이 완벽한 아버지가 어디 있을까? 두 아버지는 모두 주어진 아버지 역할에 온갖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상적인 아버지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이 아닐까. 물론 실수하고 실패하고 잘못하기도 하며 아버지를 향한 길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 이 모든 게 아버지라는 길의 일부이며 이런 과정 없이는 더 나아질 수 없다. 차갑고 이성적이며 미숙하게 그려지는 료타지만, 이런 면에서 이상적인 아버지의 자질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 케이타와 류세이를 서로 바꾸고 난 후, 류세이와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 법도 했지만 료타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료타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아들과 어떤 가족과 함께하든, 점차 나아지고 결국 이상적인 모습에 도달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최고의 아버지, 이상적인 아버지라는 정답은 없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어찌 답이 있을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스스로 당당한 아버지가, 내 아이가 인정하는 유일한 아버지가 되어 '최고'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미션
료타는 뒤바뀐 아들을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 게 옳다는 생각이 점차 강해진다. 케이타와 거리를 점차 두고 바뀐 환경에 적응할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료타는 케이타에게 미션을 준다. 강해지기 위한 미션이라는 말로 포장된 이별의 말속엔 료타의 혼란스러움과 미안함, 죄책감, 미숙함이 들어있었다. 케이타는 시간이 지나며 이 끝낼 수 없는 미션의 정체를 깨닫고 료타의 미숙한 이별의 말에 상처를 받는다. 결국, 료타가 케이타에게 돌아와 미션은 끝이라고 말을 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료타가 케이타에게 준 미션은 케이타의 미션이 아니라 료타의 미션이었다는 사실을. 자신의 미숙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케이타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며 이 미션은 완료된다. 이 미션은 처음 료타가 케이타에게 해준 말 그대로 정말 강해지기 위한 미션이었다. 케이타가 아닌 본인이 미숙했기에 혼란스럽고 어설펐던 시간을 지나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사랑과 책임감을 배우고 조금 더 성숙해진 아버지로, 조금 더 성숙해진 부자 관계로, 조금 더 성숙해진 가족 관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이란 길 위에선 모두가 초행이다. 이 세상 완벽한 이 하나 없으니, 모두 미숙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떤 태도로 미숙한 삶을 살아갈 것이냐가 남은 문제가 된다. 삶이라는 길 위에서 완벽하다는 감정을 느낀다는 건 완벽한 착각이었다. 료타는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아버지와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위기와 혼란을 맞이하자 이상이 아닌 허상이었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와 가족의 모습에서 이상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실패하고, 실패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배움을 얻고, 배움을 통해 다시금 성공을 향해 나아간다. 이 성공을 향한 길 위에선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포기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성공의 모습은 변화한다. 성공이 아니라 행복 또는 삶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다양한 가족의 모습
'여러 형태의 가족이 있는 것도 괜찮잖아요.' 이 말을 료타가 했다는 게 아이러니로 더 크게 다가왔다. 유다이가 말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듣고 료타가 변명하듯 내뱉은 말이었지만, 이 말은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가족의 형태는 다양하다. 사람은 저마다의 언어가 있다 보니 사랑, 호감, 관심, 배려, 이해와 같은 표현 방법은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나'를 중심으로만 다양한 사랑의 언어를 바라보면,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 역시도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자신의 우월함에 도취하여 사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 뿐이다.
료타 역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과 아버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개구리였다. 유다이 가족을 만나고 자신의 미숙함을 깨닫고 바뀌려고 노력하던 중, 카메라에 담긴 케이타의 시선을 마주했을 때 료타는 비로소 우물에서 벗어나 타인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라는 존재를 낳은 정과 기른 정 사이에서 정답을 찾으려는 료타였기에 케이타와 류세이 중 누가 더 자신의 자식이냐를 고민했었다. 하지만 케이타에게 료타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는 유일한 아버지였다. 생각해보면 류세이도 마찬가지였다. 류세이에게 아무리 바뀐 아버지와 어머니를 설명해도 당최 이해하질 못하고 '왜?'라는 끝없는 반문을 했었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다'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되려 그런 건 중요치 않다고 말한다. 자식이 자신을 낳았는지, 길렀는지, 능력이 있는지, 함께하는 시간이 긴지를 따져가며 부모를 선택하지 않는다. 진실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관계가 진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두 가족 모두가 화해하고 돌아온 케이타와 료타를 맞이하며, 두 가족이 함께 식사하러 유다이네 집에 들어가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자연스럽게 얘길 나누며 한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마치 한 가족처럼 느껴졌다. 분명 두 가족을 절망으로 빠뜨린 최악의 사건이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두 가족은 더욱 단단해졌고 한가족과 같은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뒤바뀐 아이들 때문에 뒤엉킨 가족들은 지옥 같았던 시간을 지나 더 많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새로운 가족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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